대북풍선참여

가장 값싸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대북 선교방법은 풍선보내기 입니다. 풍선사역은 폐쇄 북한에 누구나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가장 안전하고 값싸면서 효과는 극대화 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진짜 승리 !!! 북한 직접 전도 및 구제 방법 !!! 풍선 보내기

 

1. 풍선삐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북한 구원운동의 중심사역의 하나인 '자유의 풍선 날리기'는 전 북한과학원 연구원 출신인 이민복 선교사(52, 1995년 귀순)에 의해 2003년 10월부터 민간 차원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동기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그가 북한에 있을 때인 1990년 부터이다. 그가 남한 삐라를 본 것은 1990년 8월 '철원군 대전리'였다.

그 때 그가 삐라를 보고 놀란 것은 6.25 전쟁이 미국과 남조선이 아니라 김일성에 의해 북한이 일으켰다는 의문을 가지게 한 것이었다. 또한 위대한 수령이 얼마나 위대한 거짓말쟁이인가를 자각하게 만든 것이었다.

아쉬운 것은 매 해 30억원씩 쓰며 반세기동안 보낸 삐라 대부분이 북한 실정을 너무 모르는 내용이기에 오히려 역효과까지 난다는 것이었다. 가령 여자 나체사진들은 썩어빠진 브르주아 문화를 확인시켜주는 꼴이고, 남한에서 흔히 쓰는 영어식 단어들은 미국 식민지를 증명해주는 꼴로 되었다. 남한에 가서 그가 할 일은 바로 이런 것을 고쳐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4개 나라의 국경과 감옥을 거쳐 남한에 정작 왔지만 당초의 뜻을 펼칠 수 없었다고 한다. 사명보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남한 분위기는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갈수록 태산인 것이 2004년 4월경 ,국민의 정부.에서는 김정일의 요구대로 풍선삐라 자체마저 중단되었고, ,참여정부> 때에는 남측 DMZ에 있는 전광판까지 철거했던 것이다.

모든 상황과 정세는 이민복 선교사 자신이 혼자서라도 나설 수 밖에 없게 하였고 매년 30억원의 예산과 풍선기술을 가진 정부에 비해 빈털털이인 탈북자로서 아무것도 없지만 오직 믿음 하나로 "자유의 풍선 날리기"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2. 풍선삐라는 어떻게 개발되었나?

이민복 선교사가 풍선 삐라를 처음 시작한 때는 2003년 10월이다. 어린아이들이 갖고 노는 고무풍선에 삐라 한 장 씩 달아서 보내기를 시작한지 1년 반이 지나도록 북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무풍선을 하나씩 만들어가며 손바닥에는 수 없이 물집이 생겨나고 피도 터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결코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부어주어 오히려 대형풍선을 향한 개발의지를 강하게 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선교사에게 2년 만에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 주셨고, 2005년 7월 마침내 화학식 타임장치를 한 대형풍선을 개발하게 해주셨다. ( 이 때부터 북한의 공식 항의가 시작되었다.) 2008년 9월에는 훨씬 더 정확한 기계식 타임을 개발하게 되었고 풍선도 3배 이상 크게 할 수 있는 대형화, 규격화에 성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과학자 출신인 그를 예비하시고 크게 들어 쓰신 것이다.

그러나 풍향을 선택하고 적합한 장소와 시간을 선정하는 등, 풍선삐라 작업은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코 쉽지 않았다. 생업을 전폐하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그의 아내마저 풍선에 미쳤다고 집에서 나가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역경의 열매는 크고 달았다. 이 선교사가 몇년에 걸쳐 개발한 풍선삐라 기술은 현재 정부가 소유한 기술을 초월할 뿐 아니라 비용도 아주 저렴하여 몇 백분의 일 밖에 안된다. 풍선기술의 핵심은 타임기인데 70~80만원 하던 타임장치 비용을 1천원대로 낮추면서도 세개의 시스템으로 동작하던 것을 하나로 동작하도록 간편하게 개발하였다. 또한 나사의 로켓 원리로 하나의 풍선에 단.중.장거리 체계를 도입한 것은 전문기관도 감탄할 정도이다.

또한 종이삐라 대신에 비닐삐라를 선택한 것도 남달랐다. 흔히 눈과 비를 동반하는 남풍에 망가지지 않게 한 것이다. 또 풍선 자체를 북한에서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또 삐라는 손바닥 크기의 소형 삐라로부터 신문지 크기의 대형 삐라까지 형태가 20여 가지로 다양하다. 처음에는 비닐 인쇄가 흔치 않아 인쇄소를 수도 없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대형 풍선은 12m 정도이고 한번에 7.5Kg을 나를 수 있다. 이 풍선 하나에 소형 삐라의 경우 6만장, 신문 크기의 삐라는 1,500장을 실을 수 있다. 최근에는 대형 풍선을 여러개 붙여 몇 배 이상 실을 수 있도록 규격화, 대형화 하였다. 또한 풍선이 3천~5천 미터 높이에서 날아가도록 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시간에 터지게 하는 이 놀라운 풍선 기술은 이제는 더 이상 연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정교하다.

 

3. 풍선삐라에는 무엇을 담았는가?

3년 동안 도합 22차례 항의를 일으키게 한 '자유의 풍선' 효과는 삐라 내용에서 온다. 왜냐하면 북한의 정신적 기둥을 무너뜨리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신적 기둥은 크게 세가지 즉 '수령 우상화'와 '혁명주의', 그리고 '선군사상'이다. 이 세가지 기둥에서 중추는 '수령 우상화'이다.

따라서 삐라는 첫째로 '수령 우상화'를 집중 공략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은 위대한 거짓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낱낱이 밝혀준다. 중소군 하급 관이 조국을 해방-개선문을 평양에 나폴레옹의 개선문보다 더 크게 세우고 그 아들 김정일은 소련 도피 과정에서 낳았음에도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새기는 등의 거짓을 사실대로 밝혀주니 우상화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다. 한편 기독교를 반대한 공산국가들이 다 망한 놀라운 역사를 성경을 들어 상기시킨다.

두번째 정신적 기둥인 '혁명주의' 기초인 6.25 전쟁과 신천대학살 원인과 진실을 알려주어 증오의 철학을 밑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이다.거짓에 기초한 이 증오심은 진실 앞에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세번째 정신적 기둥인 '선군사상'의 허구를 무너뜨린다. 초강대국도 어쩌지 못한다는 선군사상에 미군은 고사하고 그들이 우습게 보는 남한 군사력이 상용무기에 있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밝혀준다. 참고로 북한의 군사력은 세계 18위에 불과하다. 무적의 이지스함 <세종대왕>호, 요격 불가능의 순항미사일 <청룡>, 최강탱크, 장갑차 <흑표>와 <K21>, <F16> 수준의 초음속 전투기 등을 자체로 만든다는 것을 소개한다. 가난해도 군사력 만은 제일이라는 마지막 기둥, 군사 신화마저 무너뜨리면 북한의 모든 정신적 기둥은 무너지기 때문에 북한은 필사적으로 삐라를 항의하는 일에 나선 것이다.

 

4. 풍선삐라의 놀라운 효과.

북한 당국은 2005년 8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모두 22차례 공식 항의를 해왔다. 받아먹고도 언제나 큰소리치고 뻗뻗한 북한 당국이 이렇게 많이 항의한 대북운동은 풍선사역 뿐이다. 특히 2008년 9월 수십만톤의 식량을 남한정부가 무상으로 주겠다는데도 회담에 불응하던 그들이 제발로 요청, 회담 카드가 새로 생기게 한 것이다.

요즘 개성관광을 중단하고 매달 수천만 달러가 생기는 개성공단 철수까지 고려할 정도이다. 이제 풍선은 남북문제를 좌우할 만큼 쟁점화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 효과는 매년 겨우 2천만원 또는 3천만원 어치의 풍선 비용을 투입한 결과이다. 그래서 나이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물맷돌 효과로서 풍선사역을 다윗전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2005년 풍선사역에 참여한 호야선교회 이필생 목사와 김경자 목사가 풍선삐라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그 해 10월 중국에 들어가 북한에서 나온 방문자를 만나 물어본 것에 의하면, 강원도에서 엄청나게 삐라 소문이 나 있고, 평양 대동문에 풍선이 걸려 난리가 났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2005년 11월경 탈북자 조OO씨가 기쁜 소식이라며 알려온 바에 의하면, 조씨 부인의 남동생이 중앙 무역일군으로 중국에 나와서 통화한 내용 중에 '탈북자들이 삐라를 보낸 것이 평양에까지 떨어져 김정일이 미쳐 날뛴다.'고 말했다고 한다.

2007년 9월 당시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 손정훈 씨(현재 탈북인단체 총연합 사무총장)가 점심식사 자리에서 직접 해준 이야기에 의하면, 서해상에서 가족과 함께 배타고 귀순한 인민군 대위 출신의 말을 이렇게 전해 주었다. "대북 운동에서 삐라 이상 좋은 방법이 없다. 라디오는 소지자가 적고, 또 듣긴 들어도 들을 것이 별로 없지만, 삐라는 모여 앚으면 그 본 얘기를 하여 자신도 알고 싶어 집주변 20리를 뒤져 한 장 읽고 또 읽고 귀순을 결심했다. 나중에 삐라를 잘 펴서 다른 사람이 또 보도록 마을 입구에 펴놓고 왔다."

2007년 10월 경, 북한 정보기관에 있다가 남한에 와서도 그들을 통해 대북사역을 하는 남편을 둔 여집사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정보기관에서 이민복 소리를 자꾸 한다며 해외에 나오면 잡으라, 현상금도 걸려있다고 하더라며 이민복이 누구냐고 물어보더라"고 했다.

2005년 11월 경, 중국 풍선작전을 위해 중국연변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미 연계하고 있던 한 지하교인이 급히 이메일로 이민복 선생을 잡으려고 2만달러 현상금이 걸렸으니 들어오지 말라고 하여 들어가지 않았다.